코로나19로 인해 교회는 사회로부터 비난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통계자료가 발표되었는데,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조사했더니 개신교인의 이미지가 거리를 두고 싶은, 이중적인, 무례한, 이기적인 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였습니다. 법도 지키지 않고, 교회가 통로가 되어서 바이러스를 퍼트린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뉴스에 나온 것만 가지고 오해하는 부분도 있어서 억울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세상은 교회를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좋게 보이든, 나쁘게 보이든, 세상이 여전히 교회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보여 지는 곳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교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무너져가고 있고, 타락함으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 상태에서 구원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은 교회를 통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원래는 그래야 한다는 말입니다.
엡 1:22~23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우리는 교회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고,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으로 우리의 시각을 모아 여기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위한 모임, 공간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자신을 위한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움직이는 것도 결국은 바른 통로로 쓰임 받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향하여 복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것은 이 땅에 복을 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가야 할 목적지가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곳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때 완성될 곳입니다. 그때는 모든 민족, 모든 나라가 그곳을 누려야 할 때입니다. 이 목적지가 완성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오늘 교회를 사용하십니다. 바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통로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열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처음 세워진 교회는 집이 곧 교회였습니다. 집에 모여 함께 말씀과 기도, 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으로 건물이 세워지게 되었고, 그 건물에 많은 사람이 모이면서 직분이 생기고, 여러 가지 법을 만들어 교회를 운영하면서 제도화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함께 모여 서로 격려하며 세워가는 공동체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본질인 성도들의 모임이나 생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건물이나 직분만이 교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건물인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교회 건물을 통해 하나의 거점이 되어서 함께 모여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여기서 교회의 중요한 표현 가운데 하나는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로서 교회가 교회됨을 세워가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사역하시듯이 교회는 서로 다른 지체들이 모여 함께 사역할 때 하나의 목적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개인으로서 교회이든, 공동체로서 교회이든 우리는 교회로서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부름받은 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내가 교회 됨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사명 없이 살게 될 것입니다. 교회로서의 삶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