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 안에 다양한 감정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아마도 불안한 감정일 것입니다. 불안한 감정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불안을 이겨보려고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사람들과 접촉을 시도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방법이 더는 효과를 내지 못할 때 더 큰 불안함이 몰려오게 됩니다. 불안함이 커지면 우리는 그 불안함을 합리화하기 위한 정보들을 찾게 됩니다. 유튜브를 보고, 페이스북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보내 주는 정보의 링크를 쫓아다닙니다. 그러면서 내가 가진 불안감의 원인이 바로 저것 때문이라고 몰아갑니다. 그리고 그 불안함을 이겨내기 위해 분노를 사용하게 됩니다.
미국 잡지의 글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나타나는 지도자들의 유형을 소개한 것입니다. 살아남으려는 자, 다시 돌아가려는 자, 상황을 잘 대처하는 자로 구분하였습니다. 살아남으려는 자는 물 위로 머리를 계속 내밀고 있기 위해 발버둥 치는 유형을 말합니다. 이겨낼 상황도 되지 않고, 이겨낼 힘도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유형은 다시 돌아가려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회만 보고 있습니다. 빨리 다시 모임을 하고, 다시 예전의 기쁨을 맛보고, 다시 함께 많이 모여서 서로 힘을 얻는 그런 때가 올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전의 그림을 머리에서 지울 수 없습니다. 그때의 영광, 그때의 기쁨, 그때의 환호 속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황을 잘 대처하는 자입니다. 이들은 이번 기회를 새롭게 정비할 기회로 삼는 사람입니다. 온라인 시대를 이해하고 활용하여 효과적이고 새로운 교회나 삶의 모델을 만들 기회로 삼고 고민하며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단지 지도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오늘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각자 고민의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그냥 분노만 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옛날의 향수에 젖어 있을 것인가?
저는 이 코로나19의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기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욥기 42장 5절에 보면 모든 고통의 시간이 다 지나간 다음에 욥이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던 여호와 하나님을 이제는 삶의 현장에서 만나고 경험하는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함께 모여 예배할 때 옆 사람의 찬송 소리를 들으며, 옆 사람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누렸다면 이제는 아무도 없는 나만의 공간에서, 내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심지어는 고통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살아가는 때가 되었습니다. 더 친밀하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누려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라고 물으면 보통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비록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지만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주실 지혜와 능력을 의지해서 도전하며 살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않았기에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전하는 삶에는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특별히 눈으로 주를 뵙는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