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음으로 만지셨습니다. (11~13)

예수님께서는 나인이라는 작은 성으로 가십니다. 그곳은 북쪽 갈릴리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중에 한 장례행렬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본문의 이야기는 죽은 자의 어머니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죽은 자는 그의 어머니의 외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과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많은 무리가 동행하였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많은 무리, 그리고 과부와 죽은 외아들이라는 말들이 서로 대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무리 속에 섞여 살아갈 때 안전함을 느낍니다. 안심하며 산다는 말입니다. 많은 무리라는 말은 주류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전체 분위기를 이끌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 한 외롭고 슬퍼하는 과부의 초라한 모습이 비춰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예수님은 이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돌아온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바로 그 마음을 가지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이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큰 근원이 되었습니다. 이 마음이 그곳의 상황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 놀라운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2. 손으로 만지셨습니다. (14~15)

사실 예수님은 관에 손을 대시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죽은 자에게 손을 대는 것은 부정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충분히 그 장례 행렬을 무시할 수 있었고, 멀찍이 떨어져 있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비대면, 비접촉의 상황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 관을 향하여 가까이 다가가십니다. 그리고 그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관을 메고 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럴 때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를 그 어머니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왜 예수님은 비대면, 비접촉의 원칙이 있는 상황 속에서 이런 일을 하셨을까요? 어쩌면 이 과부의 아들의 장례 행렬이 그 시각, 그곳을 지나가는 것은 예수님께서 일하시도록 내어주신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그런 상황은 절대로 놓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다가가셔서 만지심으로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3. 영으로 만지셨습니다. (16~17)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단순히 지역의 공공기관이 할 수 있는 일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살리셨을 때 그 일을 통해 사람들이 두려워하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경계를 넘어섰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삶 속에 사람의 역할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사역 방법이나 목적을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그럴 때 소문이 두루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 퍼진 소문은 우리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과 그 하나님이 지금도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접촉하는 방법은 분명히 다릅니다. 나의 이익이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