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음에서 생명으로 회복

아버지에게 내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말하고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은 재물을 다 모아서 먼 나라에 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결별한다는 의미입니다. 13절에 보면 먼 나라에 가서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였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허랑방탕이라는 헬라어는 문자적으로는 구원에 합당하지 않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아버지와의 연결 마저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죽음의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올 때, 예수님은 이 아들이 회복해야 할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는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겼습니다. 측은히 여기다는 말은 불쌍히 여기다는 뜻입니다. 이 땅에 죽음의 상태에 놓여있는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있는 곳에 치유가 일어나고, 회복이 일어납니다. 아버지는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불쌍히 여기심으로, 눈물로, 감격으로 달려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2. 잃어버림에서 찾음으로 회복

12절에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이 말은 아들이 아버지를 버리겠다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아버지의 처지에서 보면 아들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분배받아 그 재산을 가지고 갑니다. 그러나 그 재산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13절 끝에 보면 낭비합니다. 그리고 14절에는 다 없앴다고 말합니다. 이 아들은 자기의 모든 것이 돈이었는데, 그 돈이 다 없어졌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그 돈이 아들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었는데, 이제는 그 돈 마저 없어졌으니 아버지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아버지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아들 자신입니다. 아버지는 지금 돈을 잃어버린 것 가지고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관심은 아들입니다. 그랬기에 돌아온 아들을 향하여 아버지는 단호하게 행동합니다. 아들의 옷, 아들의 표식인 가락지, 아들의 신발을 신겨 아들임을 온 세상에 보여주며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근심에서 즐거움으로 회복

24절과 25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은 즐거움입니다. 그 즐거움을 풍악과 춤추는 소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가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큰 아들이 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큰 아들은 자기 동생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자기의 것을 가지고 간 것에 대해 분노합니다.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입니다. 어쩌면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가기 전의 모습이 아닐까요? 의무적인 가정의 삶이 아니었을까요? 서로 미워하고, 서로 시기하고, 서로 경쟁하며 살아가던 모습이 아닐까요? 형제의 사랑은 없습니다. 형제의 기쁨도 없습니다. 내 것을 챙기려는 의지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즐거움으로 변화시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상하시는 회복의 모습은 즐거움입니다. 잔치입니다. 기쁨입니다. 그 자리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