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목사님이 쓰신 글 가운데 알베르 까뮈가 쓴 페스트라는 책을 통하여 일반은총을 발견하였다는 글이 있습니다. 까뮈의 페스트를 요약한 글을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무대는 알제리 해안 도시 오랑이다. 죽은 쥐들이 나타나면서 페스트를 선포하고 도시가 봉쇄된다. 공포와 고통과 죽음이 난무한다. 전염될 수도 있고 전염시킬 수도 있는 상황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를 만드는 상황이다.

극한의 절망 속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의사 리유는 의술이 페스트와 싸우는 절대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오랑에 묶고 있던 여행자 타루는 도시의 상황을 기록하면서 보건대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페스트에 전염되어 세상을 떠난다.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가 신의 징계라고 믿으며 회개를 촉구하던 중, 리유를 만나 보건대 활동에 참여하다 죽음을 맞는다. 신문기자 랑베르는 오랑을 취재하다 페스트 때문에 오랑에 갇힌 후, 여러 번의 탈출 시도 끝에 보건대에 합류한다.

투쟁의 중심에는 혈청 개발과 방역에 힘쓰는 보건대가 있다. 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인간의 가치를 구현하며 희망을 추구한다. 인간성 안에 희망이 있다고 믿으며 페스트에 둘러싸인 부조리를 타개한다. ‘인간이란 누구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인간의 연대틀 통한 희망으로 페스트를 통해 얻게 되는 일반적 가치다. 페스트는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 기독교가 말하는 일반 은총의 가치와 의미를 그렸기 때문이다.

전염병으로 고립된 상황에서는 도피적 자세와 초월적 자세를 가지기 쉽다. 도피적 자세는 나와 상관없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행동으로 질병이나 고통을 회피한다. 초월적 자세는 그 상황을 전적으로 초월적인 신에게만 의존해서 질병과 고통을 해결하려 한다.

도피와 초월이라는 양극단은 일반 은총을 떠나 일반 이성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생각이나 믿음 모두가 없는 자세를 버리고 질병과 고통에 맞서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자세요, 예수님이 죄 많은 세상에 성육신하신 방식이다. 세상을 떠나 도피하고 은둔하는 것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방식이 아니다. 세상에 동화되거나 세속화되는 것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방식이 아니다. 죄 많은 세상에 오셔서 구원하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예수님과 동일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중요한 실행 명제가 있다. 페스트가 말하는 성실성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노력과 투쟁으로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는 성실성의 문제다.

까뮈의 페스트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 태도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삶을 다스리고 계심을 믿는 믿음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가 있음을 또한 믿고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두려움과 염려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일상의 삶을 살아갑니다. 신앙도 일상의 삶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신앙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 가치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것은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내가 원하는 것, 무조건 치유되는 것, 코로라19가 종식되는 것만이 은혜가 아닙니다. 내가 어려움 속에서 살아낼 수 있는 지혜를 주신 것, 힘을 주신 것, 환경을 주신 것, 기회를 주신 것을 보며 살아갈 때 그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교회 있다 보면 다양한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럴 때 왜 권사님들이 교회에 와서 기도하지 않느냐고 항의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다른 분을 위해 교회에 안 가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상 속에서 성실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열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누리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