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깊어 가면서 우리 안에는 내심 기대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입니다. 백신만 나오면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은 지나가고 예전의 그 삶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마음껏 돌아다니며 여행하고 즐겁게 살던 때 말입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리며 찬양하고 기뻐하던 그때를 말입니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수고하면 돈을 벌던 그런 때를 말입니다. 벌써 코로나가 시작된 지 반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몸과 우리 마음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세월 속에 다져진 습관과 삶의 방식으로 인해 미래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학자들이나 경험자들이 코로나 이후의 삶은 변화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말을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할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1989년에 ‘백 투더 퓨쳐’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상상으로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만든 영화입니다. 그때 미래로 간 시간이 2015년이었습니다. 하늘에는 택시들이 날아다니고, 자동 운동화가 나왔습니다. 말만하면 텔레비전 체널이 바뀌고, 텔레비전이 없이도 영상이 나옵니다. 휴대전화도 나오고, 말만 하면 음식이 나옵니다. 스케이트보드가 날아다니기도 합니다. 물론 이 영화는 과학적인 요소들을 많이 보여 주었습니다마는 새로운 상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처럼 과거에 영화 속에서 상상하던 것들이 이제는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 안에는 무엇이든지 상상을 하면 그것이 조만간 나오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술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점점 상상과 현실의 간격이 좁혀져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상상을 하고 그것을 말하면 헛소리라고 치부하던 것이 이제는 현실 속에서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를 상상하며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시대가 곧 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며 사는 삶은 우리로 하여금 준비를 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미 지금 여기서 미래를 살아가게 합니다. 대학교의 인기 학과가 바뀌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미래에 유용하게 쓰일 것인가가 기준이 아닙니까? 취직이 잘 될 것인가가 기준입니다. 사실 미래는 오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때가 올 것을 준비하며 학교에 들어가고 공부하며 그 시간을 지금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언텍트 문화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조심스러워합니다. 이런 때에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는 매우 민감한 고민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코로나 19가 끝나면 교회에 가겠습니다.’ 글쎄요. 그때가 언제일까요? 우리는 언제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교회에 나와 예배할 수 있을까요? 저는 시간의 관점에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예배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라고 봅니다. 모임 예배는 개인 예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개인 예배가 가정예배가 되고, 가정예배가 목장예배가 되고, 목장예배가 교회의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모임 예배가 다시 개인의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개인 예배를 회복할 시간입니다. 이것이 이미 온 미래를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방식입니다. 공동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자리에 개인 예배가 없다면 그곳에는 예배가 없는 삶이 되고 맙니다. 반대로. 개인 예배를 드리는 자리에는 공동체 예배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개인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예배에 대한 이해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 앞에서 경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는 힘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오늘 교회에 오셔서 예배드리는 여러분의 삶에 집으로 돌아가 드리는 개인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미래를 지금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