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세상의 눈치를 참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가? 저렇게 사는 것이 옳은가? 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그 삶의 모습은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게 됩니다. 자녀들의 양육 방식이나, 자녀들의 학교생활에서도, 더 나아가 가정의 문화를 만들어 낼 때도, 부부간의 삶에도, 부모님과의 삶에도 우리의 모든 기준은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이 기준이 아니라 세상이 기준이 될 때가 많습니다. 교회 나와서 신앙의 삶을 살아가면서 이 분야를 이겨내는 것이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교회와서 예배하고 기도하면 그렇게 살아야지 하다가도, 막상 사회 속으로 들어가면 옆집의 이야기가 들리고, 다른 삶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내가 저 세계 속에서 뒤처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몰려 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처럼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며 애쓰게 됩니다.

새로운 교회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사고방식과 삶의 습관으로 세워가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고 세워가야 하는 교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교회는 교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교회는 어떤 철학이나 신학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더니 세워지는 교회입니다. 초대교회는 신학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살았더니 놀라운 삶이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 삶은 그들이 과거에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던 삶입니다. 그러나 그 삶이 말씀대로 살았기에 옳은 줄 알고 받아들이면서 교회의 문화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다시 몸부림쳐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되는 새로운 문화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열어가는 새로운 교회가 바른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그로 인해 드러나는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았더니 어떤 열매가 나타났느냐에 따라 우리가 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열매가 나타나야 하겠습니까?

먼저는 영혼 구원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섬기고 세워갈 때 결국은 영혼 구원이 일어나야 합니다. 친구 하나를 사귀는 것이나, 교회 동료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교회의 모든 사역이나 삶에서 영혼 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조금 천천히 해도, 살살 해도 괜찮습니다. 우리 자신들의 유익만을 위한 것이라면 멈추어도 괜찮습니다.

또 하나는 성도의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 안에서 서로 부딪치면서 살아갈 때에 그 방향은 삶의 변화입니다. 초대교회가 성령이 임할 때 함께 모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 변화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새로운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만큼 다이나믹한 것이었고, 분명한 방향성이 보이는 변화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회 생활이 유익해야 합니다.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기쁨이 있다는 것은 내 욕구가 채워졌기 때문에 생기는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나의 역할이 이루어졌기에 누리게 되는 기쁨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교회를 꿈꿔야 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 안에 새로운 방향과 비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껍데기는 내려놓고 진짜 누려야 할 것을 누릴 수 있는 교회로 자리매김할 때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교회로써, 교인들로서 큰 은혜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