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습관을 만들 때 필요한 시간이 있습니다. 어떤 습관을 가지기 위한 시간이냐에 따라 습관을 가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21일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66일의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100일의 법칙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일만 시간의 법칙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의지와 태도, 가치에 따라 그것이 한 사람의 습관이 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두 번의 행동으로 습관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훈련하고 연습하고 반복할 때 그것이 나의 몸을 움직이게 될 때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습관을 바꾸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분명한 의지가 있어야 하고,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하고 때로는 눈에 보이는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의 의지가 그것을 감당해 내지 못하게 됩니다.
이처럼 새로운 습관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습관을 이야기할 때 다른 면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습관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습관을 바꾼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모든 습관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새롭게 가지려는 습관과 반대되는 것은 부딪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삶이 들어오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습관이 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신앙생활이 습관적이지 않았나를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습관적이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을 주관한 지 벌써 100일이 지나갔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새로운 습관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내 의지로 습관을 키운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습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 처음에는 불안하고, 두렵기도 하다가, 점점 반복되는 영상 주일예배, 움츠린 삶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과 생각, 그리도 태도도 바뀌게 된 것입니다. 물론 모든 분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나태해지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삶이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신앙은 수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신앙은 철저히 능동적인 것입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누가 나에게 하나님을 만나도록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이 말은 누가 움츠리고 있는 나의 손을 끄집어 내어 하나님의 손에 올려 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내가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신앙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신앙에 대해 매우 능동적으로 깨어 일어나 행동할 때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능동적인 습관을 가져야 할까요? ‘은혜받는 습관’이란 책에 보니까 말씀의 습관, 기도의 습관, 교제의 습관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이 내 삶에 적용되도록 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관계 속에서 누려야 합니다. 교제를 통해 성도들과 공적인 예배에서, 또한 서로를 통해 성장해야 합니다. 이런 습관은 시간을 떼어 우리 삶의 자리에 흔들림 없이 서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정돈하고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창교회는 말씀과 기도, 교제의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도와 드리겠습니다. 도와주는 것만으로는 절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능동적인 태도로 우리의 삶의 습관을 바꾸어 나가는 도전이 있어야 합니다. 얼마의 시간이 걸리던 우리가 스스로 이 삶을 살아낼 수 있을 때까지 도전하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이제는 진짜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때입니다. 껍데기가 아니라 진짜의 삶을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