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100일 이상 지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무기력감이나 우울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코로나 블루라고 부릅니다. 코로나19의 코로나와 우울감을 뜻하는 블루를 합친 말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외출 자제, 모임 금지, 자가 격리, 재택 근무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스트레스나 우울감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 블루의 증상은 내 몸에 열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불안해하는 경우나 혹시 내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고, 내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도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어서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입니다.

어쩌면 전 국민이 이 코로나 블루 초기 증상들을 다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면 괜히 내가 불안합니다. 식당이나 카페에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는 것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로 인해 가지게 되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내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들을 보면 내가 교회에 나감으로 다른 성도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매우 많은 것 같습니다. 기침이 조금 나거나, 몸이 조금 불편하면 어디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나 때문에 코로나가 퍼져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 긴박감이 나를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코로나 블루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가 우리의 마음을 매우 힘들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보다는 물리적 거리두기, 신체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나 혼자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공동체를 통해 가치를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누리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다 보니 어떤 모임에 가는 것도 매우 두렵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워지게 된 것입니다.

질병이나 고통이 우리를 엄습할 때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도망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핑계로 더욱 친밀하고 더 가까이 다가갈 때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 돌봄과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코로나 블루에 갇혀 있다 보니 움츠리고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코로나 블루를 이기기 위한 좋은 방법은 신앙인의 삶에 있습니다. 단순히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코로나 블루가 떠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코로나 블루와 같은 우울감 때문에 힘들어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우울감을 이겨낼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내 안에 있는 힘과 능력을 확인하고 두려움을 이겨내는 자리에 나아갈 도전을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들에게는 다른 성도들이 있습니다. 목장을 통해 여전도회나 남선교회를 통해 성도들이 서로 연락하여 격려하고 위로할 때 얻게 되는 힘은 우리로 하여금 코로나 블루를 이기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하며 그 기도의 결과들을 함께 나눔으로 영적 공동체임을 확인할 때 비록 몸은 거리두기를 하고 있어도 우리의 영은 풍성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선창가족 여러분! 우리의 환경이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겨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자원을 활용하여 코로나 블루와 같이 우리를 무너지게 하려는 것을 잘 대응함으로 더 큰 소망과 확신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선창의 공동체가 함께 이겨내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