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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서기관입니다. 서기관은 율법학자라고도 불렸습니다. 이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있는 상황 속에서도 율법을 지키며 율법에 따라 살기 위해 몸부림칠 때 그 율법을 정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율법학자들입니다. 구약에는 에스라가 율법학자, 서기관으로 보여집니다. 이들은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일하면서 율법의 적용이 올바른지를 판단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 서기관 가운데 한 사람, 율법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과 마주하고 섰습니다. 그동안 바리새인과 헤롯당, 그리고 사두개인과 논쟁을 벌이는 것을 듣고는 예수님께 와서 묻습니다. 서기관은 아마도 논쟁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예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이 질문을 율법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율법학자는 모든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율법 가운데 무엇을 하라는 것은 248개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은 365개입니다. 이것을 합하면 613개입니다. 613개의 율법을 외우고, 가르치면서 서로 연결되는 율법도 있지만 때로는 서로 대치되는 율법도 있습니다. 이런 율법들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어떻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가? 매우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신명기 6:4-5의 쉐마를 인용하여 ‘첫째는 이것이니’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30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첫째라는 말은 가장 중요하다, 가장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모든 가르침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바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합니까? ‘네 마음, 목숨, 뜻,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다하여’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전부, 모두, 온전히 이런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어떤 노력, 의지, 애쓰는 힘만 생각하면 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잘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힘을 다하여 예배하면, 정성을 다하여 예배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참된 신앙은 내가 믿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지금 무엇을 누리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관계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을 향하여 무엇을 많이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하나 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관념을 뛰어넘어 그 사랑을 누리는 하나님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믿는다고 말하는 그 사실을 뛰어넘어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관계 속에 들어와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른다는 것은 주님은 저기에 서 계시고 나는 여기서 그 주님을 향해 무언가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 들어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모습입니다.

삶의 힘은 관계에 있습니다. 사랑의 힘은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이웃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에게 친구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바른 관계가 맺어질 때 그곳에 참된 사랑이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서기관이 얼마나 지혜로운 자인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금방 알아 듣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선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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