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이 지키는 세 가지 절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 살아갈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기 위해 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내 백성을 내 보내라고 할 때 바로가 듣지 않습니다. 그럴 때 열 가지 재앙을 내립니다. 그 마지막이 장자의 죽음입니다. 그 땅에 있는 모든 집의 장자는 그 밤에 죽음이 지나갈 때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는 어린양을 잡아 그 양의 피를 집 문설주에 바르면 죽음이 그 집을 넘어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유월절이란 말은 넘어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칠칠절은 모세가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기념하기 위해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 대 절기 가운데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합니다. 이것이 배경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의 모습으로 보면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들어가셔야 맞을 것 같은데,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까이 왔을 때 제자 둘을 마을로 보내십니다. 그곳에서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원래 순례객들은 걸어서 예루살렘 성전까지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제 거리도 사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나귀를 타시겠답니다. 그것도 새끼 나귀를 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구약에서 나귀는 왕이나 메시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49장은 유다지파에서 통치자가 나온다고 할 때 나귀가 등장합니다. 또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때 나귀를 탔습니다. 특별히 스가랴에서는 장차 올 온유한 평화의 왕 메시아가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신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볼 때 왕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인지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나귀를 타고 가시는 예수님을 향한 백성들의 반응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는 순례자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나귀를 타고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한 행동은 유월절 순례객들이 보여주는 행동이 아니라 초막절 순례객들이 보여주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레 23:40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초막절을 맞아 매일 제사를 드렸지만 마지막 날에는 포도주 대신 물을 붓는 날입니다. 실로암에서 물을 떠다가 금항아리를 기울여 물을 부을 때 제사장의 은 나팔이 울려 퍼지면 버드나무 가지를 든 제사장들이 단 주위에 둘러섭니다. 그러면 찬양대가 시편으로 찬양을 드립니다. 이때 성전에 모여든 십만에서 이십만 명의 유대인들이 오른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왼손에는 아르바 미님의 다른 가지들을 들고 흔들며 함께 찬양을 합니다. “호쉬아나, 호쉬아나” 호쉬아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란 말이고 나는 지금, 제발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호쉬아 나는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 제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장면을 보면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종말의 성취자로서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환영하는 순례객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