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절과 34절을 통해 예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아주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일어날 일들입니다. 먼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다음 34절에 보면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내일과는 상관없는 모습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영광을 볼 것인가에 초점이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요청합니다. 제자들은 주의 영광중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들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영광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 사회가 요구하는 계급 구조입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자리를 주시면 우리는 당신에게 충성하겠습니다. 호혜를 베풀어주면 충성하는 사회질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의 질서 속에서 살지 말아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 삶을 살아내는 자세가 달라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의 자리를 떠나 수도원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직업을 갖고, 세상 속에서 사업을 하고, 세상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그 삶을 살아가는 태도, 방식은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제자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42절에서 예수님은 이방인의 집권자와 제자들을 대조하십니다. 그리고 45절에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42절에서는 ‘지금 너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안다.’ 그러나 4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44절에서도 ‘너희 중에’라고 말합니다. 너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여기서 중요한 차이는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일하는 주체, 그 일로 말미암아 이익을 누리는 주체가 자기들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달라야 합니다. 제자들은 주체가 다른 사람입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이익을 누리는 주체가 다른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 때 내가 얻을 유익보다 다른 사람이 얻을 유익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것이 제자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의 자세, 삶의 가치라는 것입니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나님 나라의 참된 규칙은 겸손한 섬김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직접 실천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대속물이라는 단어는 출애굽 사건 때 사용하던 용어입니다. 대속물이란 말은 값을 지불하고 묶임에서 풀어줄 때 지불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제2의 출애굽을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서 바디메오의 눈을 뜨게 하시는 장면으로 마무리하십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바디메오가 소리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오늘 우리의 소망은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참된 하나님 나라, 승리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