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정결이라고 하는 단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정결이냐 부정이냐를 통해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 그들이 해야 할 일들, 그들이 함께하는 사람들을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결을 강조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질서 속에 거하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경계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해진 정결 안에 있으면 하나님과 교제하며 누리는 것에 있어 어려움이 없지만, 정해진 정결 밖에 있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정결의 관점을 후대에는 단순히 행위를 제한하는 용도로 쓰여질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이 나아가느냐 아니냐의 관점이 아니라 정해진 율법이 전통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전통을 지키는 것에만 머물러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태도들을 바꾸실 뿐 아니라 그들 안에 있는 정결의 규정까지도 새롭게 바꾸십니다. 복음으로 정결의 경계를 확장하십니다.
오늘 이야기는 음식을 먹을 때 해야 하는 전통과 계명의 충돌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세 가지를 문제로 제시합니다. 첫째, 떡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는 것. 둘째, 시장에서 돌아와서 몸을 씻지 않는 것. 셋째,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답변을 하십니다. 6절에서 13절까지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 다시 말하면 위선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29:13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분명하게 규정하십니다. 그들의 모습은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공경하지만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고 하는 이사야의 외침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입으로, 입술로, 다시 말하면 말로만 하는 외적인 모습을 장로의 전통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행위의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위의 유지와 자랑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진짜 중요한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붙들고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무시하고, 사람의 전통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이 14절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는 무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막 7: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은 그동안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가지고 있던 정결법에 대하여 완전히 다른 기준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더 나아가 구약의 음식법에 대하여도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손을 씻는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갔지만 예수님은 그 대답을 하시는 것을 통하여 먹는 문제 전반으로, 그리고 부정해짐의 근원 문제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계신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가 하면 17절에 보면 제자들조차 이 비유를 두고 물어보았을 정도입니다. 평소에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지만, 육체에 잠시 영향을 끼칠 뿐, 사람 본성의 핵심 요소인 마음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을 더럽히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19절에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외형적인 정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정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