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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먼저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권자이심을 고백할 때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시작됩니다. 감사는 관계에서 나오는 단어입니다. 특별히 어려움과 아픔,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을 때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1. 바다를 잠잠하게 하신 주님 (4:35-41)

35절은 ‘그 날 저물 때에’라고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바다로 나가십니다. 바다에 들어갔을 때 큰 광풍이 일어납니다. 물이 배에 가득합니다. 바다는 어둠을 상징합니다. 혼돈을 상징합니다. 그곳에 광풍까지 일어나고 물까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예수님은 주무시고, 제자들은 광풍을 바라보며 난리가 났습니다. 일어나신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십니다. 바다에게 말합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랬더니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제자들이 심히 두려워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 주님은 자연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이 모든 자연을 창조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이 자연을 다스리실 수 있는 분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습니다.

 

  1.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하신 주님 (5:1-20)

5장 1절에 보면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라고 시작합니다.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다를 건넜기에 이제는 혼돈이 없고,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거라사인의 지방이라고 말합니다. 그곳에는 악한 귀신들린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굉장히 포악합니다. 그의 몸속에는 귀신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귀신을 군대라고 불렀습니다. 이 군대라는 단어는 레기온이라고 하여 로마의 군대조직을 말합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귀신을 담고 있는 그가 예수를 보고 달려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큰 두려움으로 떨며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무엇을 하시면 자기들은 괴로움이 처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1. 죽은 딸과 혈루병 여인을 고치신 주님 (5:21-43)

21절 배경도 바닷가입니다. 예수님은 바다를 건너오셨습니다. 다시 유대인의 지역으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곳에 여전히 죽음이 있고, 부정함이 있는 곳입니다. 죽음과 부정함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죽어가는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여인, 이 이야기는 두 개의 대조적인 상황이지만 그 대조 속에서 공통된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 종교적으로 존경받는 사람과 사회 종교적으로 소외된 부정한 여인이 각각 절박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이 오셔서 손을 대어 주시기만 하면 죽어가는 자기 딸이 치유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혈루병에 걸린 여인은 예수님 뒤에서 예수님의 옷을 만집니다. 누군가는 사회적, 종교적 지위를 통해 손을 대어 달라고 간청을 하던지, 스스로 몰래 손을 댈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든지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치유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공통으로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믿는 믿음입니다. 인간의 질병과 죽음의 문제를 다스리시는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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