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의 가족인가?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입니다. 성경에서 가족은 그 사람의 정체성에 관한 핵심 기준점이 됩니다. 그러기에 가족에서 확장된 개념인 친족이라는 개념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별히 유대인은 이 친족에 의해 유지되어 온 민족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정말 우리의 친족인가를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하시면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강한 가족의식, 확장된 친족의식을 새롭게 재구성해 나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난주 마지막 부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막 3: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사실 바리새인은 보수주의자이고, 헤롯당은 극단적 진보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때문에 그들은 하나가 됩니다. 그런 다음 7절부터 10절까지는 예수님께 몰려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선택하십니다. 이런 배경은 지금 사람들을 나누는 구조가 바뀌어져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었다면, 이제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로 구분되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의 친족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막 3: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그러면서 이야기는 31절로 넘어갑니다. 막 3:31~32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 있다는 이 표현은 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비록 육신적 가족이지만 아직 예수님의 진정한 가족 안에 포함되지 못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적 가족은 밖에 있지만 지금 사람들은 예수님을 둘러싸고 앉아있습니다. 그러면서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와 내 동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진정한 친족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새로운 친족을 말할 때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입양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나만 입양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끼리는 모두 형제요 자매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확장된 친족의 개념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사는 것,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은 사실 새로운 삶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법과 기질과 윤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형제자매의 관계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치십니다. 또한 연합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함께 힘을 모으는 단합이 있어야 합니다. 한마음이 되어, 한뜻으로 세상을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협력하고 서로를 명예롭게 해야 합니다. 서열을 위해 경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새로운 친족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