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옷, 음식, 날, 행동, 절기와 같이 그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별함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들이 유대인이기에 여호와 하나님과 더 친밀하고 깊이 누리는 것에 초점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누리는 것보다는 그날을 지키는 형식들을 강조함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누구인가를 보여줍니다. 그러다 보니 유대인들은 이날이 깨어지지 않도록, 이날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려고 그날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곧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처럼 유대인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표식인 안식일에 대한 개념을 예수님은 새롭게 재정의하시면서 바꾸어 가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안식일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잘랐다고 설명합니다. 이 장면을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그런 그들을 향하여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참된 표식은 우리의 외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어서 우리의 모든 삶을 움직이는 힘이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원래 만들어진 안식일 규정은 일하는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안식일 자체가 짐이 되는 날이 아니라 안식일을 통해 즐거워하고 기뻐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바리새인들이 규칙들을 계속하여 만들어 내면서 이제는 안식일 자체가 짐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안식일이 사람들에게 참된 쉼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쉼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두 번째는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이라는 말은 안식일보다 크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인자이신 주님은 안식일에 지배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규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안식일에 안식일 규정을 어겨도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랍비들입니다. 제사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 안식일 희생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금지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을 주관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제사장보다 더 높으신 대제사장이 되셔서 이 안식일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세 번째는 안식일의 참된 의미는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장으로 가면 회당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등장합니다. 손이 말랐다는 것은 장애로 태어났다기 보다는 점점 말라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안식일에 예수님 앞에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손을 치유해 주심으로 생명의 삶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