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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다양한 경계선이 있습니다. 경계선 안에 있는 것을 정결이라고 하고 그 밖에 있는 것을 부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이런 구분을 만들었겠습니까? 이런 구분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거룩함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 거룩함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이 정결이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부정입니다. 성경에 보면 유대인들은 모든 것에서 정결과 부정으로 나누었습니다. 사람을 볼 때도 이스라엘과 이방인으로 구분하였습니다. 공간적으로도 성전과 이방의 땅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시간에 대해서도 안식일과 다른 날로 구분하였습니다. 음식에 대해서도 먹을 수 있는 고기와 해산물과 새를 구분하였습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고 삶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정결과 부정을 구분함으로 자기들의 경계선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주님으로서의 길을 걸어가시면서 당시 사회가 일반적으로 수용하며 가지고 살아가던 다양한 정결과 부정의 경계선을 넘나드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넘어가셨던 정결의 경계선은 사람들, 음식, 시간, 공간과 같이 모든 영역에서 의도적으로 경계선을 넘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이 경계선을 넘나들 때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볼 때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권력적, 정치적 경계선에 가까이 올 수 없는 그런 예수님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경계선을 넘나들 때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누구시기에 이 경계선을 넘나드시며 사역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갈라졌습니다. 성령이 내려오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전통으로 만들어진 이 경계선을 따라야 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경계선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가지게 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정결 규례를 새롭게 규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하시는 장면이 본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정결과 부정에서 부정함의 대표적인 상징과 같은 것이 바로 나병환자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정결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만들어 놓으신 경계선 안에 머물러 있는 것, 다시 말하면 인간의 피부에 아무런 상처나 흠이 없음을 유지하는 것이 정결함입니다. 그런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렸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나병환자는 치료해 달라는 말보다 깨끗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치료는 병이 낫는 것이 목적으로 하는 말이지만 깨끗하다는 것은 종교적으로 부정함을 떨쳐 나오고 싶은 갈망이 있는 표현입니다. 이 질병 때문에 육체적으로 고통당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더 힘든 일은 종교적으로 부정한 자로 낙인찍혀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당하는 것이 너무나 힘든 문제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부르짖음을 들을 때에 그를 보시며 ‘불쌍히 여기사’ 불쌍히 여기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누리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보시며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이 마음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유대인이라면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 인간이라면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넘어가신 것입니다. 41절에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라는 말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그 경계선을 넘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을 향하신 사랑,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실 수밖에 없게 하셨던 그 사랑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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