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너무나 싫어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는 함께 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엄중하게 다스리십니다.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하라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아간이 전리품을 숨김으로 말미암아 죽게 된 것도 그 이유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모습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막는 사람의 온갖 불경건함과 불의함을 겨냥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런 하나님의 진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당시 수치의 상징이었습니다. 너무나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매질을 당해야 합니다. 발가벗겨집니다. 두 손과 발에 못을 박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세웁니다. 다리를 꺽습니다. 죽을 때까지 뜨거운 태양 아래 매달아 둡니다.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면 저주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고통스럽고, 그만큼 수치스럽고, 그만큼 잔인한 형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 죄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떻게 우리의 죄악을 담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제사법을 주셨습니다.

이 제사는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사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가축 중에서 소나 양의 흠 없는 것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해야 합니다. 안수한다는 것은 꾹 눌러 의지하는 것입니다. 누른다는 행위 속에는 제사를 지내는 사람의 모든 죄가 이 소에게 전가되는 것입니다. 안수하는 행위는 제사를 지내는 사람의 죄가 소에게 전가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안수하는 것은 흠 없는 소의 정결함이 안수하는 사람에게 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맞바꾸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 수송아지를 죽입니다.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그러나 죄는 죽여야 하기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그 피를 받아서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려야 합니다. 또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번제물의 가죽을 벗겨야 합니다. 각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워야 합니다. 이것들을 제사장에게 가져다주면 제사장은 불을 피워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습니다. 그리고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어 제단 위에서 불살라 태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신 뒤에는, 우리는 더는 소나 양의 제사로 나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히브리서 10장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된 참된 예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의 죄를 넘겨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죄를 담당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