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에는 대조적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엘리 제사장과 한나입니다. 엘리는 의로운 제사장이었지만, 자녀교육은 실패한 아버지였습니다. 엘리 제사장에게는 삶의 우선순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제사를 무시하는 자식들의 행태를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엘리가 두 아들들의 악행에 대하여 타이르기도 하고 꾸짖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가 하나님보다 두 아들을 더 소중히 여긴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반면 한나는 엘가나의 아내로 신실한 여인이었지만 자식이 없어 힘들어 했습니다.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에게 바치겠다고 약속하는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마침내 한나는 임신하게 되었고 사무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사무엘이 젖을 뗀 후 남편 엘가나의 동의를 얻어 사무엘을 데리고 여호와의 집에 가서 제사장 엘리에게 사무엘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비교가 되는 것은 제사장 엘리는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중히 여겼지만, 한나는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한나는 하나 뿐인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을 존중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또 다른 대조적인 사람들이 나옵니다. 먼저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규례를 무시하는 자들이었고,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종교적 불량배들이었습니다. 불경한 일까지 서슴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반면 사무엘은 하나님을 섬기며 자랐습니다. 어느 날 사무엘이 법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에서 자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세 번이나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은 믿음 안에서 양육되었습니다. 그는 선지자였고, 제사장이었고, 사사였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산 모범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무엘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존중한다는 것은 존재가치를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은 존중해도, 나를 멸시하는 사람을 굳이 존중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그런 겁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민족이든 국가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존중받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 또한 멸시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작금에 우리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현상들은 우리를 몹시 두렵게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도록 회개하고, 말씀에 바로서서 깨어 근신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존중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존중함을 받는 사람들이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