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린다는 것은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 듣는다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그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럴 때 그 말씀이 귀로 들려질 뿐 아니라 그 말씀이 내 삶에 들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삶이 그 말씀으로 인해 순종하는 것까지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 고집대로 살아가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다른 비기독교인과 다른 차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란 의미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달하고 그 말씀을 듣고 믿고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는 듣는다는 말은 없지만 모든 상황 속에 듣는 행위로 말미암아 순종이 일어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의 권위를 누리게 되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2. 보아야 합니다.
보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 눈으로 보는 것을 통해 그 의미와 메시지를 볼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에 본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본다는 말이 감추어져 있어 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잔치가 중단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땅의 포도주를 만드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궁극적 목적인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실 때가 아직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십니다.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시려고 하는 것은 이제 새로운 잔치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궁극적으로 보게 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잔치가 시작되었음을 보는 것입니다. 그 잔치는 과거에 너희가 가져다 먹었던 포도주로 인해 누렸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말합니다. 더 좋은 잔치입니다. 더 기쁜 잔치가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3.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한계들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 속에 갇혀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한계 속에 갇혀 생활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한계를 깨트리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은 표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상징적 행위였다는 말입니다. 단순히 포도주의 질적 변화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땅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의 변화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된 죄로부터의 자유와 새로운 생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은 그를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적 한계를 뛰어넘어 일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누리게 된 것입니다. 생각의 한계를 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