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3주 동안 탕자의 이야기를 통하여 작은아들과 큰아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용서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용서하시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말하기를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게 되는 삭개오의 이야기는 더욱 분명하게 우리에게 그 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리장이인 삭개오가 있습니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자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 안에 예수님을 보고 싶은 열망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갑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꽤 유명한 사람이기에 자기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와 예수님 사이에는 어떤 관계도 없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길을 지나가시다가 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보고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은 반드시 머물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은 삭개오에 대하여 용서한다는 표현이 없지만, 실제로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죄인인 삭개오를 받아들이는 용서의 표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행위에 대한 용서를 말씀하지 않으시고 삭개오 그 자신을 수용하셨습니다. 삭개오라는 그 존재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그 사람에 대한 인격적 수용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돌아온 아들을 향하여 아버지가 달려가 안아 주시는 것이 인격적 용서입니다. 삭개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죄의 선언은 하지 않아도 이미 용서의 행위를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작은아들을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깁니다. 오늘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를 용납하신 것입니다.
이런 용서의 사건이 일어나고 삭개오는 그 용서가 자기의 것이 되게 하였습니다. 용서가 자기의 것이 되었다는 표현이 바로 회개입니다. 예수님의 선언에 따른 삭개오의 회개의 응답입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님의 용서에 대한 삭개오의 응답은 매우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삶의 고백으로 회개한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잘못으로부터 돌이키는 행동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용서에 따른 회개의 응답입니다.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는 과거와는 다른 삶의 모습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런 삭개오의 회개를 들으신 주님은 9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선포입니다. 회개의 요청은 구원의 선포를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구원의 약속에 근거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회개를 통하여 구원이 결정되는 조건이 아니라 회개는 구원과 연결되어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회개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머릿속에서 생각을 바꾸는 것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분명한 삶의 변화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되돌아가는 관계 속에서 전적인 변화입니다. 그러기에 회개는 하나님과 관련된 단어입니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는 분명한 방향성을 가진 단어입니다. 죄로부터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회개의 선언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