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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큰 아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질서입니다. 아버지로 말미암아 세워진 새로운 질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주권이 아버지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오늘은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에서 구원으로 옮겨지는 과정에 관한 것입니다. 어떻게 죄에서 구원으로 옮겨지는가, 어떻게 죄인에서 구원받은 자로 옮겨 가는 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성전으로 오셔서 백성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세웠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나와 있는 돌로 치라는 규정을 가지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율법을 내세우며 예수님이 그 여자를 향하여 돌을 던지라는 말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이로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떠나가고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돌을 들었던 사람 중에 먼저 돌로 치는 자가 그 죽음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감히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항하여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하며 그 죽음을 확증해 줄 수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몸을 일으켜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여자가 대답합니다. “주님,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오늘 본문에서 이 이야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용서한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하던 예수님의 대화가 이 여자에게 임하였습니다. 이 여자와의 대화 가운데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기 위한 어떤 조건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어떤 선행해야 하는 행위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입니다. 예수님은 있는 그대로의 여인을 향하여 용서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유대인의 율법과 관련하여 어떤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의 규례나 관심에 따른 어떤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조건없이 일방적인 용서를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용서했을까? 우리는 우리의 가치와 우리의 기준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치체계로는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님의 일방적인 용서이기 때문입니다.이 이야기를 통하여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예수님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다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4~5절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애굽에서 먼저 건져내십니다. 그런 다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의 용서를 먼저 경험해야 합니다. 이 여인과 다를 바 없는 죄인인 나를 우리 주님은 무조건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 주님의 용서를 보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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