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섬기는 메시야
마태복음 8장부터는 예수님의 치유 사건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구원 선포는 소외되고 배척받는 자들에게 구원이 선포되었습니다. 가난한 자, 굶주린 자, 핍박받는 자, 어린아이들, 억압받는 자들에게 구원이 선포됩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이야기도 나오는 것처럼 여자들에게도 구원이 선포되었습니다. 특별히 본문 앞부분에서는 문둥병자에게 구원이 선포되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이런 치유 사건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한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시거나 치유하실 때에 그 자리에는 언제나 군중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와 기적들은 이 무리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볼 수 있게 하여 주는 연결고리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짧은 공생애 기간에 예수님이 강력하게 당신이 메시야임을 인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치유나 기적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치유의 기록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고 난 뒤에는 한 번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예수님의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되심은 자신을 자랑하거나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아지셔서 우리를 섬기시기 위한 것입니다.
2. 자비하신 메시야
문둥병자는 피부병이라고도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문둥병이라고 판명되면 공동체로부터 격리되었습니다. 문둥병자들은 다른 사람과 접촉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근처에 사람들이 나타나면 소리를 질러서라도 그들과 격리되어야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진짜 힘든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단순히 피부에 있는 질병보다 더 힘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성전에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공동체로부터도 분리되었습니다. 사실 문둥병이 걸리면 메시야를 영접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다가가셨습니다. 3절에 보면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아라. 깨끗하여진지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이 가장 힘들어 하고 어려워하던 소외됨으로부터 풀려나는 순간입니다. 그들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해내십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메시야를 누릴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3. 이방인의 메시야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다양한 형식으로 구원을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선언한 구원은 이방인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구원은 이방인과 싸움에서 이기고 약속의 땅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많은 경우 하나님의 통치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은 서로 대립 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이방인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오히려 이방인들이 구원의 자리에 있게 되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백부장은 로마 시민권자입니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지배권자입니다. 예수님은 속국의 시민이기에 피지배권자입니다. 그러나 그런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호를 요청합니다.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할 때에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으로 인해 예수님이 보호자가 되시고, 백부장은 피보호자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