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가 탐구하려는 실재가, 그리고 우리가 그 일부분인 실재가 인격적 창조자의 작품이라면, 권위는 그 창조자에게 귀속된다. 반면에 실재가 그 자체의 내부에 있는 어떤 과정들의 결과라면, 예를 들어 약육강식의 생존 경쟁의 산물이라면, 권위란 그저 우월한 힘을 묘사하는 한 가지 방식에 불과하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진리. 레슬리 뉴비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자기들의 이야기가 진리라고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다원주의 세계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생활방식이 존재하는데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사회가 세속화 되면 될수록 이런 다원주의적 사고는 점점 더 늘어나게 됩니다. 세속사회라는 말은 정해진 규범이나 신념이 없는 사회를 말합니다. 자유로운 사회라고 말하지만 이는 참된 진리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세속 사회 속에서 진리를 붙들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붙들고 있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세속주의의 모든 사고는 우리에게서 출발합니다. 우리에게서 출발하는 사고는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진리는 우리에게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합니다. 성경은 진리는 하나님과 관련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본문 2절에 보면 우리가 믿는 진리는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안에 거한다는 말은 우리가 진리 안에 들어가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이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라고 선포하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그러기에 삼위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진리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 진리가 없는 사람은 미혹의 영이 거하는 거짓된 성도가 됩니다. 이 진리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붙들고 있는 이 진리는 언제 우리 삶에서 진리로 역사할 수 있습니까? 4절에서 요한은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진리를 행하는 자는 일차적으로 이단에 미혹되지 않고 그 진리를 붙들고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좀 더 확대하면 세속주의 속에서 진리를 붙들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가리켜 진리를 행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믿고 확신하는 것이 분명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 진리가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진리 때문에 우리가 헌신하게 됩니다. 진리로 인해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떠나 진리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리이신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였다는 말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미혹하는 자들이 세상에 들어와 하나님을 거역하게 할 때, 그 미혹에 넘어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훈을 무시하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음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는 예수님이 진리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싸워야 할 현실입니다. 보이지 않는 전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