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에는 두 종류의 지혜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것이 힘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이중적이기 때문입니다. 8절에 보면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15절에서도 두 가지 지혜를 말합니다.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와, 땅위의 지혜, 즉 정욕과 귀신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성품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나는 지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그 지혜로 말미암은 삶의 열매를 나타내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살아갈 때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 번째는, 선행으로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참된 지혜와 총명을 가진 사람은 선행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참된 지혜와 총명이 있는 사람인지를 분별하려면 그 사람의 성품과 생활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다른 사람이나 어떤 상황을 본받으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중에 절반은 바울이나 다른 장로와 같은 그리스도인 지도자를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성부 하나님,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본받으라는 말을 사용할 때에는 단순히 율법을 알려 주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보여주는 삶을 살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샘플을 보고 싶어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떤 명령을 수행하는 것으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선한 행실이 일어나야 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성령의 일하심의 열매들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온유함으로 보여야 합니다.
위로부터 임한 지혜는 우리의 삶에 온유함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온유함은 단순히 어떤 부드러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함은 구원의 징표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마땅히 보여줄 모습이 온유함입니다. 부름과 선택의 표시이며 성령의 역사입니다. 온유함은 인간의 단순한 성품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결되고 그의 형상과 일치될 때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지도자들이 죄를 범한 그리스도인을 바로잡을 때 온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훈계를 할 때에도 온유함으로 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온유함이 오히려 승리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힘과 온유함이 함께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온유함은 방향을 의미합니다. 온유한 사람의 삶은 인내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화해를 추구하며 나아갑니다. 그들은 오래 참는 성격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가는 곳마다 화평이 일어나게 됩니다.
세 번째로, 자랑과 거짓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14절에서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땅위의 것이고, 정욕의 것이고, 귀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그런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습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