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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성품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그 생각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삶의 자세입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성품이 바로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나는 온유하고 마음이 겸손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이 성품을 바울이나 야고보, 베드로와 같은 사도들도 가지고 있었고 그 삶을 살아감으로 복음을 전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겸손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의미는 위에 있는 것, 높은 것에 대하여 아래 있는, 낮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옳은 법에 대하여 자신의 행위를 일치 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그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태도입니다.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11절과 12절에 보면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판단하고 비방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내가 기준이 되고 내가 법을 만들어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기준이 되셔서 율법에 따른 처벌을 수행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참된 심판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고 인정하고 고백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겸손한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왜 우리가 믿음의 성품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야고보는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복음 때문입니다. 이것을 심어진 말씀(약 1:21)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안에 심어진 말씀인 복음이 우리를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이 있는 사람은 복음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믿음의 성품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종말론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믿은 믿음이 오늘을 지탱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동기이지만 내일의 소망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는데 큰 동기가 됩니다. 우리가 윤리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고 명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명예가 되는 행동은 하려고 하고, 수치가 되는 행동은 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누구로부터 수치를 당하고, 누구로부터 명예를 얻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이 보는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우리는 주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인가? 아닌가를 염두에 두어야합니다.
약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겸손의 성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12에서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사야에서는 겸손은 우리의 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야고보는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먼저 전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의 뜻에 조건 없이 항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마귀를 대적하여야 합니다. 숨겨진 죄를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손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죄를 짓게 하는 비밀스런 욕망을 제거하여 우리 마음이 성결하여야 합니다. 흉악한 죄를 향하여 슬퍼하여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주님 앞에서 행할 때 주님이 높여 주십니다.

선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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