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랑하고 싶은 것을 참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랑하고 싶은 그것이 우리에게 자부심을 주고 긍지를 주고 만족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식 자랑, 가진 것을 자랑, 얻은 것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이 세상에서 서로 경쟁하거나 남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들 때문에 자랑하는 것은 허탄한 자랑이라고 하였습니다.(약 4:16) 약 4:15, 17에서 야고보는 왜 이런 것이 허탄한 자랑인가를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랑하는 것들이 마치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것 같이 행동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실제로 하나님의 뜻의 통제 아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사도 바울도 육신의 것으로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는데 이것은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육체를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용하여 자기의 영광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하여 우리가 가진 것으로 자랑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교만하게 하고, 그 교만은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 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자랑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내 삶의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진정한 자랑은 우리의 가치를 바꾸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낮다는 말은 경제적인 관점이라기보다는 지위적인 관점입니다. 지위가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특징은 자부심이나 긍지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때에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낮은 자가 높아질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메시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야고보는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적 가치에서 매겨진 지위의 낮음으로 인해 고통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가지고 이겨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세상적 가치가 아닌 다른 차원의 자랑의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재물을 포기하는 것을 자랑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재물에 매여 살아가지 아니하고 영혼의 더 큰 유익을 위해 미래에 낮아질 때에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힘을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지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 기쁨을 누리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여기서 기쁨을 누리는 기쁨의 원인이 자신의 혈통이나 총명함을 자랑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 자랑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면 그 자랑은 귀한 것입니다. 바울도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약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자랑해야 합니까? 말로 하면 자랑이 됩니까? 우리가 해야 하는 자랑의 형태는 말 뿐만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자랑한다는 것은 자부심을 느낀다는 말입니다.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이 자랑하는 삶입니다. 주님의 방식을 의지하는 것, 주님의 뜻을 의지하는 것이 곧 내 삶으로 보여주는 자랑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