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생명이 회복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것은 원래 하나님께서 지으신 에덴동산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드신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진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뱀입니다. 뱀은 하나님의 사랑에 회의를 품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하와는 선악과를 보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나무로 보이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범죄의 결과는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수치심입니다.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습니다. 원래 이들의 모습은 2장 25절에 보면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난 다음에 자신들을 바라보았을 때 이것이 부끄러움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수치심에 상처를 입으면 몸부림칩니다. 그곳에는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난 다음에는 수치스럽기 시작한 것입니다.
둘째는 두려움입니다. 8절에 보면 남자와 여자는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에, 주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두려워서 숨었다고 고백합니다. 에덴동산의 근원적인 모습은 하나님과 마음껏 동산을 노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묻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대답합니다. 벗은 몸인 것이 두려워서 숨었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들이 숨은 것은 벗은 몸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 그들로 하여금 숨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진실을 왜곡하기 시작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다는 말입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그 원인을 돌립니다. 하와는 뱀에게 그 원인을 돌립니다. 이것은 부부공동체의 관계가 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서로 원망하고 탓하는 관계는 이미 깨어진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예수님은 수치를 느낄 필요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수치의 극치의 자리에 내 몰리셨습니다. 우리의 수치를 제거하시기 위해 수치를 당하신 것입니다. 두려움의 극치의 자리에 나가셨습니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회복을 이루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간절한 기도를 드리십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의 바램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들을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1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바라신 기도의 목적은 제자들이 공동체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회복하고 누리는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교회를 통해 성도들이 서로 수치심을 떨쳐내고, 두려움 없이, 관계를 회복하여 누리는 삶입니다. 선창교회가 바로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