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성찬예식을 주의 성찬, 주의 만찬이라고 부릅니다. 성찬을 하는 목적은 이 성찬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신 모습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의 죽으심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성찬을 베풀 때 빵과 포도주에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임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찬을 행하면서 떡과 포도주를 받을 때 받는 자들의 믿음에 영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육체적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영적인 방법으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에 정말 믿음에 의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와 그 죽으심의 모든 유익을 받고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성찬을 합당하게 받은 자들은 육체적으로나 육욕적인 방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모든 유익과 함께 그들의 영적 양식을 얻습니다. 그리고 은혜 안에서 자라납니다.
우리는 성찬을 시행할 때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신다고 고백합니다.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유익이 없이 기념으로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성찬은 우리에게 실제로 그리스도의 유익을 주는 은혜의 수단이자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거룩한 규례입니다. 성찬의 효력은 떡과 포도주의 힘이 아닙니다. 시행하는 사람의 경건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 주심 때문입니다.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죽으심에 내가 함께 죽었음을 선포하며 참여하는 그 고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연합과 교제를 의미합니다. 연합이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모든 성도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와 지속적인 교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인하여 우리는 살아있는 믿음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교제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라일이라는 청교도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싹이라고 한다면 그와의 교제는 꽃이 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연합이 어린 아이의 상태라면 교제는 장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음을 확인하고 고백할 뿐 아니라 끊임없는 교제가 일어나고 있음을 확증하고 누리는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성찬은 참여하는 성도의 자세로부터 시작됩니다. 성찬식은 마치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의 순간을 목격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찢기심을 보여주며, 포도주를 잔에 따르는 것은 피가 쏟아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찬에 참여할 때 합당하게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살펴야 합니다. 먼저 주님의 몸을 분별하는 지식이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왜 성찬에 참여하며, 성찬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주님을 양식으로 삼는 믿음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성찬을 통하여 내 안에 참된 회개가 있는지,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새로운 순종함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없이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주신 그 은혜와 사랑의 삶이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합당하지 않게 와서 성찬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임하는 심판을 먹고 마시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고 정결한 마음과 거룩함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아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