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유신론과 무신론을 이야기 할 때에 유신론은 믿음의 문제이고, 무신론을 과학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신론이라고 하면 과학적 사고, 이성적 사고, 합리적 사고로 말미암아 나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유신론이나 무신론이나 둘 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유신론은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무신론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세계관도 각자가 믿는 믿음의 체계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기본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신념들의 포괄적인 틀입니다. 우리가 가진 근본적인 신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범위는 단순히 성경의 어떤 사건을 믿는다고 말할 때의 한 부분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믿음에는 우리의 삶의 이유와 목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근원이 무엇이고, 이 세상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믿음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악이 왜 있으며 어떻게 하면 그 악을 물리치고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에 대한 믿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입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15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데리고 있다가 내 보내야 하는 바로는 그들이 애굽을 떠나자 마음이 변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추격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들어가는 그 길에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달려오고 있고, 그들의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두려워하며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원망합니다. 광야에서 죽는 것이 낫겠다고 불평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들 앞에 놓인 홍해를 갈라주신 것입니다. 바다가 마른 땅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애굽 군대가 수장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드디어 홍해의 마른 땅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엄청난 장면을 보고 노래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다른 신들과는 분명히 다른 분이시라는 것과 그분의 위대하심을 높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바로 우리 백성을 구속하신 분이심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그 내용이 바로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입니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의 이야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인 우리들을 위하여 살 땅을 마련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단순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 때에 무슨 일을 하셨는가에 집중하면 진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놓쳐 버릴 수 있습니다. 창조는 단순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을 만드셨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창조는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창조의 사건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믿음으로 고백하고, 그 믿음으로 우리의 방향을 정하고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삶의 문제입니다. 창조의 이야기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누려야 할 모습이 무엇이며, 어디로 가야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