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의 시작은 ‘그리고’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다음에 ‘그리고’가 나옵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용할 양식과 죄 용서의 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식을 구하는 것은 실질적인 육신의 문제를 위한 것이지만, 죄 용서를 구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필요를 위한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 둘은 같은 사고방식, 같은 삶의 원리가 지배하는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며 그 하나님께 철저하게 의존하여 살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계속하여 그런 의지가 나타나야 합니다.
마태복음 본문에서는 죄 지은 자를 빚진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죄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죄를 빚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문구는 금전적인 문제를 위한 구절이 아니고 우리의 죄 문제를 위한 구절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고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어를 사용할 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은 죄를 하나님에 대한 빚으로 보았습니다. 우리의 죄는 빚을 진 것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처럼 죄 지은 사람에게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죄 짓는 것과 빚을 지는 것의 개념이 같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할 때에 한글 말로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하나님,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와 동시에 우리도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하겠습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하며 기도할 때에 우리의 마음 가운데는 동시에 우리의 이웃을 향하여 미움과 원망이 아니라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겠습니다.’라는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미움의 마음을 품고 그들을 어렵게 대할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합당한 기도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너희 형제를 향한 작은 용서가 없으면 이 어마어마한 하나님 아버지의 용서를 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해야 하는 주기도문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와 동시에 우리도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겠습니다.’라는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마 6:14-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