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앞부분은 세 번의 아버지를 향한 청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뒷부분은 세 번의 우리를 향한 청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첫 청원이 바로 양식에 관한 것입니다. 육적인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육체적인 문제가 오늘 우리를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필요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육체적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다른 것도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되어 있고, 우리가 고백하는 주기도문에도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되어 있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라는 간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로 나아왔을 때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만나를 주시면서 하셨던 말씀이기도합니다. 만나 이야기가 배경입니다.
출 16: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광야에서 배가고파 애굽을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셔서 그들의 매일 필요한 양식을 채워 주셨습니다. 이 만나를 주신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보게 한 것입니다. 비록 작은 것, 하루 만을 위한 양식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음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마실 물이 없다고, 오늘 배가 고프다고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려 주심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요구 하셨습니다.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없다는 것을 보고 원망하고 불평하였다면, 있음을 보고는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 하나라도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아침이면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저녁이면 메추라기를 공급하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주기도문의 네 번째 청원에서 중요한 단어들은 ‘오늘, 우리, 일용할 양식’입니다. 먼저 ‘오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일만 바라보고 사는 자들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자들입니다. 오늘을 소중하게 여기고,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의 현실에 감사하며 맞이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입니다.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사람은 우리입니다. 나 혼자만의 배만 채우는 자들이 아니라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남의 것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할 때에 그것은 썩어지게 됩니다. 나의 것을 만족할 줄 알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것을 나눔으로 우리를 누려야 합니다. 나를 통하여 우리가 행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내 육신의 만족을 채우는 것이 궁극적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더 크고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삶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할 줄 알고 기뻐할 때 하나님의 일하심과 임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축하고 아껴서 쓰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에 만족할 줄 알 때에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 의뢰할 수 있게 되고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만족과 감사, 그리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