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 그동안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보게 하고 하나님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보다 작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도 없고, 우리로 하여금 살아가지도 못하는 나라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소유하고 살아가고 있는 온 우주보다 크신 분이셔야 합니다. 그래야 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를 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와 별개의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포괄하는 나라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우리는 더 크신 왕을 보아야 합니다.

오늘 그런 하나님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배를 드릴 때에 영원하시고 영화로우시고 찬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처럼 어떤 수식어로 높여 드린다고 되는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온 우주를 초월하여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기에 부족함이 없고, 우리의 모든 생각과 판단과 가치와 삶을 주장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도록 하셨겠습니까? 존재가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름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중요성, 대표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 가운데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종류에는 자신의 존재와 본질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 속에는 우리와 맺고 있는 관계를 표현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 샬롬, 여호와 라파와 같은 이름들입니다. 우리에 대한 소유권과 지배권을 가지고 있음을 선포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한다고 하는 것은 그 하나님의 존재의 속성을 선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존재를 선포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왕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만났을 때 그렇게 분노하며 달려 들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엘리의 두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김이 깨어질 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지 아니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한다는 말도 되겠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다고 할 때에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월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거룩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존재적으로 거룩함이 나타날 때 윤리적으로도 차별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 땅의 삶을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 때에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알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없으면 내가 주인이 되어 명령하는 삶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름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계속하여 살아가겠다는 결단인 것입니다.

선창교회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