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창세기 3:9에 보면 죄를 짓고 두려워하여 숨은 아담을 찾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은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셔서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도록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심으로 말미암아 아담의 깊은 자리를 보게 하십니다.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지금 어떤 모습인지를 발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며 하나님을 대면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9절에 보면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디에 있든지 찾아가셔서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백성들을 향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땅 끝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를 부르시는 그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내가 찾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입니다.
2. 하나님의 여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10-14)
우리는 지금도 길을 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걸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 걸어가는 걸음입니다. 우리의 여정이 승리하는 여정이 되기 위해서는 나를 위해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여정을 알아야 합니다. 10절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함께 하심을 우리가 알고 하나님께 나를 맡길 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은 당장 대적들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승리하도록 인도하심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담대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손을 붙들고 돕고 계심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목표로 삼는지, 무엇을 절대 가치로 삼는지에 따라 숭배의 대상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 자신만이 시작이고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우리의 그림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만의 여정이 아니라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여정에 내가 들어가야 합니다. 단순한 종교행위로서의 신앙이 아니라 삶의 걸음으로서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15-16)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여정을 열어 놓으시고 그 여정에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사용하실 때 우리의 마음을 갈아엎으십니다. 묵은 밭을 기경하셔서 깨어진 내 질그릇에 절망하는 내가 그 틈 사이로 질그릇에 담긴 보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도구로 서 있는 삶의 모습니다. 그럴 때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겠고’라고 말합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 안에서 그를 믿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일치되는 삶을 살아갈 때에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지함으로써 그 안에 머물러 있을 때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나를 자랑하는 삶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자랑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힘이고 능력입니다. 느 8:10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