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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로 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12-13)

기독교의 본질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외형의 형식적인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15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우리의 믿음을 판단하는 핵심은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입니다. 12절과 13절에서 육체, 할례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이것이 염려거리가 되는가 하면 13절 끝에 ‘자랑하려 함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갈라디아 교회가 육체를 자랑하였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몰려온 거짓교사들이 가장 강조하며 가르친 것이 할례인데 육체의 할례를 행하는 것이 구원의 징표가 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것으로 인해 구원이 이루어진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보조 수단으로 밖에 쓰여 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내가 몇 명 할례를 주었다는 자랑을 하려고 하는 것이 진정한 할례의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1.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야 합니다. (14-15)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유대인이란 의미이고, 유대인으로 있는 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할례를 받은 사람은 자동적으로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할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구원이 그렇게 할 때에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조차도 율법을 다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주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율법의 저주 아래 매인 우리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인간적인 노력으로도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철저히 바로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1. 규례를 지키는 삶이어야 합니다. (16-18)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역적인 이스라엘을 뛰어 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가 바로 할례파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16절에서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규례를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규례는 성경을 말합니다. 성경이 잣대가 됩니다. 성경이 우리의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14절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이 규례를 행할 때만 평강과 긍휼을 누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연합을 할 수 있는 것은 규례를 행할 때입니다. 평강과 긍휼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는 완전히 누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연약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신 규례를 통하여 우리는 참된 평강의 기준을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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