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의 두 거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베드로와 바울의 충돌사건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진리 때문에 일어난 충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안디옥에 도착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할례자들이 오자,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이 오자 그는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떠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 때문에 13절에 보면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을 향하여 바울은 베드로와 다른 사람들이 외식적 행동, 위선적 행동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한 것은 단지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입으로는 복음을 말했지만 정작 행동으로는 복음에 걸맞지 않는, 다시 말하면 복음의 진리를 부정하는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진리가 무엇입니까? 5절에도, 14절에도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15절부터 복음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안다고 하였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 사함을 받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의 어떤 행위나 공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용납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고 있는 복음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 하시며 구원을 받게 하신다면 이방인 신자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과 함께 식탁을 나눌 수 없다면 그것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행동이라는 말입니까? 16절에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라고 말합니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14절에 말하고 있는 대로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향해 바울은 14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할게 하려느냐’
그렇다면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누려야 하겠습니까? 19절에서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우리가 이 복음 앞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게 됩니다.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그러면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