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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까? 시므온의 이야기와 연결시켜보면 25절에 말하고 있는대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는 자였습니다. 38절에 보면 예수님을 만난 안나가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고 말합니다. 그런 것으로 보아 안나도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나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었다는 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36절에 보면 안나를 소개할 때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선지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안나를 소개할 때에 나이가 매우 많았음을 구체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다고 하는데 나이가 84세인지 과부가 된지 84년이 지났다는 말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84란 숫자가 주는 의미입니다. 7 곱하기 12입니다. 둘 다 완전숫자입니다. 그의 삶을 완전하게 드려 기다리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태도는 끝까지 온전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또한 안나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완전하게 그의 삶을 드렸습니다.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사람들의 삶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에서 온전한 헌신과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의로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나아감을 말합니다. 금식과 기도라는 수단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을 살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섬기더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외적인 행위에 둡니다. 그러나 참된 섬김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그 삶에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갈 때 외적 섬김의 행동이 나타나게 됩니다.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였다는 말도 그녀가 얼마나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금식과 기도를 하였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금식과 기도만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집중하는 도구가 무엇이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중심의 삶을 통하여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안나는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38절에 보면 안나는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자신이 먼저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보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같은 마음을 품고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달려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들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예수님의 복된 소식은 이처럼 예수님의 구원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분명히 바라보며 이 대림절을 보낼 때에 우리의 삶을 통해 다른 많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소망을 전해주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구원을 기대하는 자가 아니라 참된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옴을 분명히 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야 말로 참으로 나의 구원자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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