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이라는 말은 죽인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을 향하여 불법으로 목숨을 빼앗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인이라는 단어는 산산히 부수다, 손상시키다, 파괴하다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살인이라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과 환경을 산산히 부수어 버리는 것입니다.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동시에 모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생명의 소중함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그러면 왜 우리는 살인을 해서는 안되겠습니까? 칼빈은 사람들 안에 공통된 본성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하나님의 형상을 제거하는 행위가 됩니다.
창 9: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또 하나 말하고 있는 것은 생명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다스릴 수 있는 분이시지 피조물인 인간이 임의대로 다스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살인하는 것은 땅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민 35:33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느니라.’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실 때 모든 것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사람만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도 파괴됩니다.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아담만 쫓겨 난 것이 아니라 자연도 변화되었습니다. 가시덤불이 나고 땀을 흘려야만 먹을 것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피조물이 죄 가운데서 고통스러워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살인이라는 말의 범위는 어떻게 됩니까? 살인이라고 할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직접적으로 죽이는 것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간접적 살해도 있습니다. 내가 직접 죽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상대방을 죽음의 생태로 내 모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떻게 가르치고 계십니까? 마 5:21-26에서 예수님은 살인의 범위를 더욱 확대하셨습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만이 살인이 아닙니다. 여기에 더하여 22절에 형제에 대하여 말로 폭력을 행사하여 그 사람의 인격을 죽이고, 그 사람을 모독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웃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도 살인입니다. 폭언이나 욕설만이 아니라 상대방을 멸시하고, 무시하고, 모욕하고, 조롱하는 막말이나 독설과 저주도 이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현대에 일어나고 있는 우발적 살인. 분노살인. 인터넷을 통해 일어나는 언어 살인과 같은 다양한 살인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된 관계성의 파괴의 극치인 살인에서 돌이켜 우리가 말과 행동과 태도까지 점검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님이 지으신 원래의 모습을 향해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단순히 살인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그 생명을 보호하고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돌보아야 할 생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