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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다는 비록 사람이 세운 사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일하시는 것을 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입다와 같은 사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입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게 입다와 같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였다는 말은 사역에 초점이 있습니다.

입다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입다가 한 일들이 있습니다. 29절에서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 나아갑니다. 그리고 군사를 모읍니다. 이렇게 많은 지역에 두루다니며 많은 군사들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입다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입다는 길르앗 사람들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여호와의 영이 임하셔서 일하셨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32절에 보면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라고 하였습니다. 입다가 암몬 자손과 싸워 승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승리는 여호와의 영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주신 승리인 것입니다. 33절에도 보면 그 승리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이런 승리의 이야기는 입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와같이 여호와의 영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이루셔야 할 일을 이루실 때 그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비록 여호와의 영이 임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그 영에 반응하지 않거나 그 영에 합당하게 응답하지 않으면 여호와의 영이 개입하지 않으시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강제로 모든 것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입다가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고 어이없는 서원을 한 것입니다. 30~31절입니다. 이런 입다의 서원은 무모하고 즉흥적인 서원입니다. 이런 서원은 해서는 안 되는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서원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먼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 사람은 여호와께 돌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번제물이란 말은 짐승 전체를 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짐승이면 문제가 안되지만 사람이면 문제가 됩니다. 율법은 인간 번제를 엄격히 금합니다.

입다는 길르앗 사람입니다. 길르앗 바로 오른쪽 옆에는 모압이 있었는데 그 모압 사람들은 그모스를 섬겼습니다. 모압 사람들은 제사 중에서 가장 귀한 제물로 자기 자녀를 바쳤습니다. 입다는 여호와 하나님을 이방 신인 그모스와 다름 없는 신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모스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면 좋아하니까 여호와 하나님도 사람을 바치면 좋아하지 않으시겠는가라는 사고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군인이 귀환을 할 때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나와 환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서 여인들이 가장 먼저 달려나와 환영을 할 것이란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자기 아내나 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오기를 기대하였던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였을 때 우리는 여호와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여호와의 영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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