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되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을 통하여 한 나라가 어떻게 고통을 받게 되는지를 본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왕이 되고 싶어했지만 정통적인 방법으로 왕이 되지 않고 스스로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비멜렉 혼자만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만든 환경이 있었습니다. 그 환경은 8:33-35에 나옵니다.

첫째는 여호와를 향한 믿음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바알을 음란하게 섬기며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섬겼습니다. 둘째는 이스라엘을 적들의 손에서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앞장섰던 기드온의 자손들을 적절하게 대우하지 못했습니다. 관계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타락이 결국 한 나라를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도록 내어주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기본 위에 언제나 서야 합니다.

아비멜렉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왕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자기 고향사람들을 모았습니다. 또한 그의 형제들을 죽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정치적 야망 때문인 것 같지만 그 뒤에는 종교적 타락이 작용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런 가운데 아비멜렉을 피해 도망갔던 기드온의 아들 가운데 하나인 요담이 비유를 들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을 향하여 경고를 하는 장면이 중간에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는 바로 아비멜렉이 몰락해 가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22절부터 55절까지입니다. 요담이 하나님께 요청한 심판이 3년이 지나지 않아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결과 아비멜렉을 도와 왕이 되게 하였던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감시하기 시작합니다. 그 지역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약탈합니다. 이런 것들이 아비멜렉을 욕되게 만듭니다. 마침내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게 됩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의외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가일입니다. 가일을 인해 아비멜렉이 분노하게 되고 그 일로 인해 세겜을 치게 됩니다. 아비멜렉의 포악함은 날로 더해갑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비멜렉은 영토를 확장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한 여인의 손에 죽게 됩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의미를 56-57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56절에서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아비멜렉이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함을 하나님이 동일하게 갚으신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셨다고 생각될 만큼 하나님의 활동이 등장하지 않고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움직이셔서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57절에는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라고 말합니다. 정의와 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연합은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게 되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57절 하반절에서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담의 저주의 핵심은 17절에 보면 아버지가 전에 죽음을 무릎쓰고 싸워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내었습니다. 18절에서는 그러나 오히려 아비멜렉이 일어나 형제들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사명은 밖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그들을 괴롭히는 이방인들을 쳐서 물리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이 그 땅에서 평안을 누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이 모든 것을 바꿔버렸습니다. 외부로 나아가야 할 사명이 내부로 들어왔습니다. 형제들을 죽이고 물리쳐 그들의 왕이 된 것입니다. 그로인해 그 내부는 혼란과 어지러움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는 우리의 삶의 태도와 자세를 말해줍니다. 우리의 신앙의 기초와 방향을 이야기해 줍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신앙의 자세를 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