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라고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악을 행하게 되면 두 가지 결정을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떠나거나, 하나님을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 거짓 신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기억한다는 말과 잊어버린다는 말은 영적인 중요성을 가집니다. 성경에서 ‘기억하옵소서, 잊지 마옵소서.’ 이런 말들은 단순히 사람의 기억력으로 기억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그 사랑을 베풀어 달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내 죄를 기억하지 마옵소서.’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알고 계시는 대로 행동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그들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에 의해 더 이상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어떤 분이셨고, 그리고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그들은 그런 것들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부흥을 가져오십니까?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스스로를 이미 바알과 아세라에게 팔아버렸습니다. 이와같이 자신들을 스스로 바알에게 팔아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고난을 주십니다. 고난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누구이며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 사람들인지를 다시 보게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찾게 하고 그리하여 다시 돌아오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넘기신 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그들에게 응징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그것을 통해 그들이 회복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육체적 고난이 8년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이어지게 되었을 때 그들은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들을 구원할 구원자를 주십니다. 그들이 회개함으로 우상을 섬기는 것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옮겨 오게 된 것입니다. 회개는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보내신 이후에 하나님은 영적 지도자를 보내십니다. 그가 바로 옷니엘입니다. 옷니엘은 매우 이상적인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영적인 리더십은 매우 중요합니다. 10절에 보면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십니다. 하나님은 옷니엘에게 권세를 주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우게 됩니다. 그래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십니다. 구산 리사다임을 이김으로 승리를 가져오게 됩니다.
우리가 옷니엘의 삶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9절에 말하는대로 옷니엘은 적들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구원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들의 삶이 평화로 끝나지 않습니다. 옷니엘의 이야기의 마지막은 11절에보면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사가 일하는 동안에는 그 땅에 평화와 구원이 있었습니다. 옷니엘은 참 좋은 사사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사사였어도 그의 사역은 그가 살아 있을 때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영적 시각을 하나님께로 고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세세토록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를 구원하고 자유케 하였고 평화를 주셨음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