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라고 할 때 사사는 ‘재판한다. 판결한다. 다스린다. 통치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판단의 문제입니다. 누가 판단자가 되어 있습니까? 누가 우리를 다스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게 됩니다.
사사기 1장에는 크게 보면 유다 가문과 요셉 가문의 이야기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그래서 여호와께서 대답을 하십니다.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그러면서 아주 확실한 보장을 해 주십니다.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4절에 보면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리고 22절에도 보면 ‘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가 올라가리이까?’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 그러면서 하나님이 전쟁의 승리를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신앙은 어떠하였습니까? 3절에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유다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군사적으로는 유다가 시므온과 함께 공격을 하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으로 보면 믿음이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유다는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들의 삶은 반쪽짜리 믿음의 삶이었습니다.
여기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4절부터 7절에 나오는 아도니 베섹을 잡는 이야기입니다. 군사적으로는, 상식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믿음의 문제로 보면 여기에서도 엄청난 실패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방법이 아니라 가나안 사람들의 풍습을 따라 행한 것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적들이 얼마나 강한지를 스스로 보고 거기에 맞추어 자신의 전략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믿음이 없는 일반 상식으로 볼 때는 전쟁은 승리를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는 그들은 모든 판단을 자신들의 생각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 병거를 보고는 그들에게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들을 쫓아내지 않은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을 내어 주지 못하고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남아 있는 가나안 족속들은 다가올 그들의 삶 속에서 가시역할을 하게 될 것들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사기 2장 1-5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면서 명령합니다.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이런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단호하게 심판하십니다.
첫째는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둘째는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라는 것입니다. 가시같은 존재입니다.
셋째는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그들이 믿는 신들, 그들의 종교가 선민이라 자칭하는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