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을 하려면 굉장히 많은 문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내려온 하나님에 관한 진술은 아주 짧고 단순합니다. 이 문장에서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주어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설명하는 세 단어가 있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그리고 천지의 창조주’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문장의 구조상 이 세 단어에서 가장 주어가 되는 단어는 바로 아버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전능하신과 창조주란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도신경 첫 문장에 보면 ‘나는’으로 시작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할 때 그 하나님이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분은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나의 아버지이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 속에는 육신의 아버지가 언제나 아버지됨의 기준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아버지로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에서 아버지는 오늘 우리 모든 아버지의 원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원형이라는 말은 가장 완전한 모습입니다. 아버지의 기준이요 표준입니다. 가장 완전한 아버지됨의 모습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이 어떻게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까? 구약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가장 많이 쓴 명칭이 야훼, 여호와입니다. 그러나 신약으로 오면 하나님에 대하여 가장 많이 쓴 명칭이 바로 아버지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그 아버지가 바로 너희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어 주심으로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십니다.

요 20:17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는 2절에 말하는 대로 후견인과 청지기로 표현되는 율법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4절에 보면 ‘때가 차매’라고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그 때가 충만하게 됨으로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 주신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5절에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첫 번째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속량하는 것은 죄의 노예 상태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로 하여금 아들의 명분을 얻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속량된 사람들을 아들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로 삼아 주심으로 말미암아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 주십니다. 성령을 보내 주신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셔서 우리가 아들임을 인식하고 느끼고 누릴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아들의 명분을 주신 것은 또한 아들로서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누리는 모든 축복을 소유한 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이유는 그 속에 사랑이 넘쳐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