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되면 바로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가 늘 찬양과 감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중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소개하는 것이 5-15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이고, 벗고,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여야 하는 것은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너희 지체를 죽이라고 하는데 지체는 우리의 신체 일부를 말합니다. 육신을 죽이라는 것이 아니라 육신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들을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음란, 부정, 욕망, 악한 소망, 탐욕인 것입니다. 6절에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임한다는 말은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 앞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이다가 아니라 지금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8절에서는 이런 것들을 벗어 버리라고 말합니다. 벗어 버린다는 말은 몸에 붙어 있으면서 우리와 함께 하는 이런 것들 때문에 드러나는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을 떼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10절의 새사람을 입었으니 새사람에 맞는 것을 함께 입어야 합니다. 옷 입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우리의 몸에 어떤 의복을 걸치는 것도 옷을 입는 것이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자격에 맞는 자세를 가지거나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특별히 여기서 바울은 명령으로 옷을 입으라고 말합니다.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순종함으로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옷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입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옷을 입어야 합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을 십자가에서 보여 주시며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닮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마땅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입어야 하는 옷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적극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며 실천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불평하고 불만거라기 있더라도 용납하고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을 어떤 방식으로 입을 것인가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긍휼과 자비, 겸손, 온유, 인내를 당연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는 방식은 바로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서로 용서를 베풂으로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옷을 입는데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용납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내가 용서해야 하는 상대에게 원인이 있지 않고 주님에게 있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용서를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행동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여야 합니다. 사랑으로 더하는 것이 온전하게 매는 띠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될 때 이렇게 갖추어진 성품의 자리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