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사회적 갈등이 심한 나라입니다. 그 갈등을 해결하는데도 돈이 들어가는데 약 300조의 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갈등이 심화될까요? 나 중심의 사회의 결과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눌 수 없고, 조율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극단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처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등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갈등의 목적은 내가 원하는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화평함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화평을 갈등의 목적으로 두고 있는 경우에는 언제나 이 화평이 깨어지지 않도록 합니다. 오히려 화평이 일어나는 방법과 말과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난 다음에 사울과 함께 지내게 됩니다. 그러나 사울에게는 악신이 임하여 다윗을 죽이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 마음 속에서 다윗을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사울의 목적은 다윗을 죽임으로 자신이 가장 최고의 지위와 명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러번 죽임을 당할 뻔 하였지만 잘 피합니다. 피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사울을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기름 부은 사람을 자신이 죽일 수 없다는 하나님 중심의 사고가 분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일어나는 전쟁이나, 시기나, 미움이나, 배반이나, 갈등을 해결하는 근본 방법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삶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윗으로 하여금 갈등을 해결하게 하는 원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에게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화평함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거룩함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에만 머물러 있어서도 안되고 이 둘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라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위협들이 우리 삶의 주변에 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뒤떨어지는 자라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 퇴보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나태해지기 시작하고 영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강해지도록 세워가야 합니다.
두 번째는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쓴 뿌리가 우리 속에 있으면 그 열매도 쓴 것이 나오게 됩니다. 결코 달콤한 열매가 맺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쓴 뿌리가 우리를 지배하지 않아야 합니다. 용서할 것은 용서하고, 풀어야 할 것은 풀어야 합니다. 억지로 덮어두고 화평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매듭을 풀어가며 쓴 뿌리가 치유될 때 비로서 화평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육신의 욕망과 망령된 것입니다.
육신의 욕망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되면 그곳에는 화평보다는 다른 사람을 무너뜨려서라도 내가 무엇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또한 망령되다는 말은 경건치 않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에서가 이 둘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는 화평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기 위해서는 이런 위협들을 잘 제거하고 화평이 목적이 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리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화평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