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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약 430년을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을 때의 상태를 신명기 4:20에 보면 ‘쇠 풀무불 곧 애굽’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노예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점점 사람들의 수효가 많아지고, 수효가 많아지니 힘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애굽의 새로운 왕의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애굽 왕으로서 그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피라미드를 만들거나 궁전을 만드는데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번 들어가서 일하기 시작하면 점점 더 노예가 되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사람들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때가 되었다고 보시고 그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광야를 거쳐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광야로 나온 그들의 삶은 방향과 목적지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은 그들만 사는 어떤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통치 아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노예가 아니라, 바로의 말에 숨죽이며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는 자들로 부르신 것입니다. 광야의 삶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가득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직도 애굽에 있으면서 잠시 광야를 구경하고 다니십니까? 아니면 광야의 길에 들어오셨습니까? 아직 우리 모두는 약속의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광야의 삶은 척박하지만 하나님을 경험하고 누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그것을 위해 지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로 나옴으로 말미암아 자유를 얻었습니다. 지금 그것보다 더 근원적인 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자유로 말미암아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한 것은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의 그들의 삶은 불평이었습니다. 원망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유는 그 큰 구원을 보지 못하고 작은 족쇄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광야를 승리하는 걸음이 되게 하여 빨리 광야를 탈출해야 하는데 우리를 묶고 있는 족쇄로 말미암아 계속 머뭇거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묶고 있는 족쇄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기억에 묶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음식의 향기와 맛을 그리워합니다. 그것은 분명 고난을 위한 미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리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나를 통해 그들의 입맛을 단순화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여러 가지를 다 얻어야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누릴 때 다른 것을 만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묶고 있는 족쇄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족쇄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끊어 버린다는 것은 내 마음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자유를 맛보며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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