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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랑은 너무 추상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34절에 보면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먼저 그 사랑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사닥다리를 뒤집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녁을 잡수시던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런 장면이 제자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종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절에 보면 베드로가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먼저는 상식적으로 이런 일은 종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베드로가 이렇게 당황한 것은 종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않아서 그렇게 하였을 수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자기 안에 있는 예수님을 향한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앞에서 명령하고 통치하셔야 할 예수님이 갑자기 종처럼 발을 씻기실 때 그 실망감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예수님만 그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가지지 못할 그 미래를 생각할 때 얼마나 만감이 교차하겠습니까? 이런 베드로를 향하여 주님은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고 하시면서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조금 있다가 예수님께서 ‘너희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서로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봅니다. 예수님이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라고 말씀하시며 가룟 유다에게 주십니다. 본문에서는 조각을 받은 후에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사실 가룟 유다는 이미 이 일을 꾸미고 있었고, 실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팔기로 마음에 작정하고 한참을 지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미 알고 함께 밥을 먹고, 가룟 유다의 발도 씻겨 주셨습니다. 함께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의 눈에 가룟 유다가 유독 많이 들어오지 않았겠습니까? 그 마음 안에 얼마나 많은 답답함이 있었겠습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의 속마음을 알면서도, 감정을 뛰어 넘어, 상황을 뛰어넘는 놀라운 사랑을 하신 것입니다. 1절에 예수님께서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랑을 할 때에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위 아래로서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는 공동체로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상호 의존하는 관계입니다. 조화와 기능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서로에게 권한을 부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현실이 요구하는 것보다 성경이 말하는 것에 초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성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34절에서 새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레위기에서는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지만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고 말씀합니다. 기준이 바뀌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의 기준은 예수님께서 하신 것이 기준입니다. 나의 입장이나, 나의 상황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십니다. 어떤 조건에 맞는 사람만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나의 현실과 얼마나 다른 가치를 요구하시는지를 파악할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선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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