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은 우리의 수고가 교회를 세워가고,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4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완전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서는 마쳤지만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그 명령을 이루기 위하여,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파하기 위해, 또한 교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고난이 바울 자신에게는 물론이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겨져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구원의 사역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것을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받는 고난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런 고난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24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갈보리 언덕길은 결코 기쁨의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그 자체만 보면 고통스러운 길이지만 근원적으로 보면 행복을 위한 길입니다. 우리의 수고,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육신적으로는 고난을 가져올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임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길입니다.
29절에 이런 모든 내용의 결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수고해야 하는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수고라는 말은 고통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수고하는데 땀 흘리지 않고 고생하지 않는 것을 수고라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수고하지만 그 수고는 단순히 나의 노력이나 나의 힘이 아니라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하는 수고입니다. 오늘 내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하심을 따라 하는 수고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수고는 언제나 내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능력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능력으로 나의 삶을 감당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5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이 바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주신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교회를 섬기는 자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의 역할은 열방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여서 영광의 소망을 전하여 주며, 믿음의 자리로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26절에서 바울이 수고하면서 전파하고 있고 가르치고 있는 것을 더욱 완전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에 비밀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오랜 세월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이제 성도들에게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비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에서는 이 비밀의 영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방인 가운데 풍성한 비밀’인데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의 소망이 되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28절에서 사도 바울은 왜 이런 수고를 해야 하는지 그 목적,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그리고 각 사람을 권면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능력이 되시는 사도 바울의 쉼이 없는 수고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 수고 그리스도의 사역이 완성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