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요나는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도망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요나가 이런 불명예를 안고서라도 도망을 치는 자가 되어야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자들이었습니다. 특별히 여로보암의 삶은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하는데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모스와 호세아와 같은 선지자들은 왕의 잘못을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사역을 열왕기하 14장25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요나가 예언하였고 이루어졌습니다. 얼마나 자신의 사역으로 인해 자부심을 가질 만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선지자인 요나가 오늘 본문에서 보면 3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도망을 치고 있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앗수르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입니다. 그리고 매우 큰 나라였습니다. 사실 앗수르가 마침내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랬기에 앗수르의 한 성읍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행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요나는 바로 그 부분에서 큰 갈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을 깨트리지 못하였습니다. 요나는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과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색깔이 너무 강하여서 그것을 버리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들일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자리에 서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문제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예,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 그렇게 하느냐 하면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같을 때는 그렇게 합니다. 내 뜻과 내 의도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도가 같을 때는 아주 자신있게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정작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는 우리는 누구를 선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선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과 틀 속에 다시 갇혀 우리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몇가지 중요한 사실을 먼저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나의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나의 하나님은 개인에게 말씀하십니다.
3. 나의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할 때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갈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계획, 생각, 전략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만큼 자라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성숙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거나, 내 마음대로 바꿀 때는 오히려 우리의 신앙이 자기 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2:10 ”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