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첫째주일입니다. 이 40일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나를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사랑을 생각하며 그 사랑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내어 드리는 시간입니다. 내 안에 있는 욕심을 먼저 보려고 합니다. 우리 안에 어떤 욕심이 있습니까?

성도가 넘어지는 원인은 욕심입니다. 인간은 이 욕심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마귀는 40일 동안 금식하신 예수님께 나아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심들을 자극하며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유혹들을 이기심으로 욕심을 극복하셨습니다.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예수님이 당하신 첫 번째 시험은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떡덩이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고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떡에 매여 있게 함으로 그 떡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마귀의 전략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먹을 떡이 없어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떡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말씀하시는 것은 그 떡에 매여 있지 않게 하십니다. 이 떡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내가 여호와 인 줄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말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데 떡 이상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의 관심을 떡에게만 두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주님은 그런 욕심의 확장을 경계하십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두 번째 시험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 내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천사들이 그들의 손으로 받아 주어 다치지 않게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명예를 향한 욕심,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을 과시하도록 하는 욕심을 나타내게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이끌어 가고 리더하기 위해서는 직책도 필요합니다. 명예도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환경과 여건에 따라 적절한 지위를 가지며 그것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누려야 할 일을 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하게 되면 욕심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당하신 세 번째 시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권력에 대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권력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권력이 그 일을 하게 하는 것 이상으로 사용되면 그것은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 이상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권력 이상으로 사용함으로 인하여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인간이 욕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시겠습니까?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잉태한 즉 사망을 낳기 때문입니다. 욕심의 끝은 멸망입니다. 바벨탑 사건이 그렇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렇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욕심을 이기는 방법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글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오늘 나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나를 움직이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